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드디어 구매했다. 서점에 책 구경 갈 때마다 매번 품절이더니, 누가 보다만 흔적이 남아 있는 한 권을 구할 수 있었다. 기형도 시인은 지금의 내 나이 즈음 생을 달리하였다. 사나운 밤이 물러가고 눈이 눈물이 되어 또 다른 세상 위에 스밀 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 해놓고. 나는 그의 짧은 삶은 왜 그리 절망으로 가득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책장을 넘기는 중이었다. 그러나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는 구절에 내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나에게도 절망이 하루의 대부분이었던 때가 있었다. 시커먼 바람이 나를 뚫고 지나가고, 이젠 나에게도 절망은 단지 잠깐의 감정, 일생의 작은 부분이 되었다. 사춘기 시절 감기처럼 앓았던 절망의 내용도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시절보다 어른을 상징하는 나이인 서른을 몇 년 앞둔 지금, 도리어 난 내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다. 언제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느낌을 알게 될까. 지금은 불확실성에 기대어 매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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