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호
# 좀, 너의 손을 꼭 잡고 걸을 때 나의 손아귀에서 모락모락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너의 하얀 손가락을 기억해. 우리가 세상 끝에 다다랐을 때 좀, 그곳은 우리가 지우개나 연필을 자주 떨어뜨리던 책상 끝 모서리 같았지. 좀, 그 낭떠러지에서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바람개비처럼 푸르르 맞으며, 무언가를 잃어버리기로 약속했던 너의 새끼 손가락을 기억해.
# 좀, 그때는 방독면을 벗기로 하자. 너의 공기는 위험하고 오염돼 있지만, 좀, 네가 원한다면 내가 누군가의 신선한 산소를 훔쳐다줄게. 아니면, 좀, 우리 다시 공기를 오염시키자. 방독면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후 우리만의 세계를 건축하자. 좀, 너의 아름다운 놀이동산처럼.
* <불가사리 2-1945년 팔월의 빨간 버튼> 중 일부분, 문학동네 시인선 005조인호 시집 방독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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